카우치 바바리맨 사건이 불러온 두 가지의 ‘대략 난감’

음악캠프는 좀 더 너른 음악을 즐겨보자고 럭스를 불렀고, 럭스는 부를려면 제대로 부를 것이지 실제연주는 생략하는 음악캠프가 좀 거시기했지만 허락했고, 분위기 더 띄워보자고 카우치를 불렀고, 카우치는 분위기 띄우는데 옷 벗으면(이게 사전모의인지 아닌지 순간적 판단인지는 아직 모른다. 경찰은 그렇게 판단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가 보여 그렇게 발표를 했지만 나는 그걸 믿지 않는다.) 방청객 뒤집어지겠지,해서 옷을 벗어던졌다.

화장 떡칠로 얼굴을 가린 것으로 사전모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그 상황에서는 의미없다. 그건 얼굴을 가린 게 아니라 자기들의 색깔에 맞춰 옷을 입는 것과 동일한 행동이다. 사전모의 여부의 정황증거로 팬티 안입은 것을 지적할 수 있지만 그사람들이 본래 팬티 안입고 다니는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에 단순 정황증거일 뿐이다. 무대 위가 엄청나게 덥고 뛰댕기면 더워서 팬티 안입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 하나가 너무 더워서 팬티 안입고 다닌다는 말을 들어봤기 때문에, 노팬티족에 전혀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M_ 그런데 결과는 엄청났다. 다들 아무 생각이 없이 행동한 결과가 지금같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왜? 왜 카우치는 바바리맨 행동을 했고 모든 언론은 카우치도 모자라 럭스까지 잡아먹으려 안달이 나고 온 국민이 똘똘뭉쳐 비슷한 반응을 쏟아내는 것일까? 워리는 그 이유를 여기에 두고 있다. | 글닫기 |

그런데 결과는 엄청났다. 다들 아무 생각이 없이 행동한 결과가 지금같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왜? 왜 카우치는 바바리맨 행동을 했고 모든 언론은 카우치도 모자라 럭스까지 잡아먹으려 안달이 나고 온 국민이 똘똘뭉쳐 비슷한 반응을 쏟아내는 것일까? 워리는 그 이유를 여기에 두고 있다.

바로 지상파라는 미디어 자체의 속성 때문이다.

워리의 견해는 그것이다. 카우치가 똑같은 무대위에서 날뛰었어도 케이블에서 날뛰었거나, 공연장에서 날뛰었으면 일이 이렇게 되지 않는다. 전파력과 확산력 때문이다. 웜 바이러스가 일부 소규모 네트워크를 타고 있을 때와 보안 라우터에 진입했을 때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모두가 사소하게 여긴 사안이 연결되어 하나하나 연결되었다가 생방송이라는 미디어를 타자 나비효과를 발생해버렸다. ‘텔레비전 생방송인게 뭐가 문제냐’는 문제제기는 미디어의 속성을 너무 안이하게 바라본 관점이라고 본다. 지상파 생방송이라는 미디어는 단시간내의 무차별 유포 속성을 가지며, 또한 보편성을 가진다. 즉 보편적이라고 인정을 받은 것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한 개별사안을 보편적인 개념으로 만드는 힘이 동시에 있기에 파급력이 세다. (방송의 보편성확보력에 대한 글은 김중태문화원 블로그에 잘 나와있다) 그리고 일방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매체의 콘텐츠 제공자는 콘텐츠가 확산되는 순간은 독점적 지위와 우위를 점하게 된다. 바로 그 한순간의 권력획득이 후일 돌아올 시청자의 반응을 더 격렬하게 만든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 도대체 뭐가 죽일놈 살릴놈을 외칠 큰 사안인가? 인디펜던트 음악을 듣자고 한 것? 지상파에서 재미있게 논 것? 몰개성에 반대하는 무개념성을 해프닝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한 것? (그 결과가 성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무시한 건 대략 심각)

카우치는 무개념적인 행동이 지상파 생방을 탔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몰랐던 것이다. 실시간으로 다수에게 전파될 때, 돌아오는 피드백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지 전혀 몰랐다. 아니, 아예 그 피드백 자체의 존재유무를 몰랐던 것이라 봐도 된다. 대한민국 지상파 생중계에서 하나를 던지면 최소한 3천만개가 돌아오게 되어있다. 행동의 책임이 3천만배로 커지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인들이 얼마나 내공이 대단한지 알 수 있는 것이다. -_-;;;) 하나를 제시해서 3천만 이상의 사람들에게 감정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온전히 대처하는 것, 그것이 지상파 생방송이라는 미디어가 요구한 내공과 영향력이다. 카우치는 전혀 인식 안 하고 있다 욕을 3천만개-_-; 들어먹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돌아올 반응의 무게를 몰랐던 상태에서 그걸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뒤늦은 깨달음과 후회는 워리 용어로 ‘쪽팔림의 무의식적 기제’를 가져온다. 즉 사태가 자신이 견딜 압력을 넘어서면 어떻게든 도피하고 일을 덮을 생각만 하게 되고, 동시에 책임의지가 사라진다. 자기에게 돌아오는 비난의 공정여부만 오로지 남게 된다. 자신의 공정여부를 따지면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자기가 뭘 했는지 알아도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때의 해결방법은 오로지 하나, 반박을 안 하고 잘못만 인정해야 한다. 매우 힘든 일이다.

2.

그런데.

지금 카우치는 잘못만 인정하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바로 카우치의 행동에 반응하는 사회의 태도 때문이다. 카우치더러 성폭력을 했다고 주장하는 측의 문제가 아니다. 카우치가 져야 할 책임의 한계선을 설정하고 그만큼의 처벌이나 교화를 맡는 쪽의 문제인 것이다.

처벌과 교화를 맡는 쪽이 카우치보다 더 개념없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더욱더 영향력이 세다는 것도 문제다. 카우치의 영향력은 생방송 한 번 탄 것으로 끝난다. 생방이라는 미디어의 속성과 함께 끝나버린다. 그러나 이 처벌과 교화의 권한을 가진 측은 단순히 입만 나불대는 것이 아니라, 처벌이라는 실제 권력을 휘두를 권한이 있으며 방송만 아니라 기타 미디어와 모든 사회의 영향요소를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이다.

당장 서울시장이 ‘그런’ 종류의 공연을 단속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경찰도 예방을 하겠다며 나섰다. 실제 예방차원에서 물리적 행사를 할 것이 명확하다. 그 사태가 더욱 문제를 크게 만든다. 솔직히 ‘그런’ 종류보다 더 심각한 룸살롱과 퇴폐영업소, 이른바 부비부비 파티, 속된말로 *커힐 호텔쇼가 더욱 명확하게 문제가 아닌가? 목적성을 상실한 일방적 매도행동이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다. 사실 진짜 문제는 바로 이 권력자들에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옹호하는 행동을 하면서, 자신들에 대한 어떠한 비난도 쏙 빼놓고 있다.

3.

카우치가 한 짓을 성폭력으로 보느냐 마느냐는 관점의 차이로 돌리고 말겠다. 워리에게 그건 성폭력이 맞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앉아있는데 갑자기 자기 성기를 나에게 들이밀면서 재미있어하는 것은 성폭력이 맞다. 그 상황에서 기존에 당했던 같은 맥락상 강도만 더 센 사건들이 파노라마로 지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카우치의 잘못 중 하나는 바로 그걸 생으로 무시했다는 점에 있다. 어린 아이들 앞에서 그랬다고? 어른 앞에서 그래도 안 된다. 여자 앞에서 그랬다고? 남자 앞에서도 그러면 안 된다. 그런 인간관계의 기본이 덜 된 행동이 지상파 생방송이라는 전달력을 타자 완벽하게 핵폭탄으로 변신했던 것이다.

성폭력을 어처구니없이 넘기느냐 대박으로 도끼휘둘러주느냐는 졸지에 당한 당사자의 내공 문제다. 이전에 일어난 싸이월드의 변태미니미가 불러온 파장도 바로 그 선의 문제다. 변태미니미 자체만 봤을 때 웃어넘길 수도 있는데 화를 벌컥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동안 싸이월드가 저질러온 성희롱적 태도(속옷 만지는 변태고양이, 메인화면에서 여자회원 소개할때 술집년마냥 사진편집하기 내공 등)가 쌓여있다가 임계점을 돌파했기 때문이었다. 변태미니미의 문제는, 그런 걸 웃어서 넘겨주기까지 쌓여온 내공이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과거의 분노를 뛰어넘을만큼 대단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끽해야 그건 아이템이었을 뿐이니까. 분노를 자제해야 할 아무 이유도 없다.

성폭력은 명백히 성폭력이 맞다. 성폭력을 규정하는 마당에 사회 성숙도를 따지면 안된다. 성폭력의 기준은 객관적 상황이 아니라 피해자의 정황이라는 대기본전제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성폭력에 대처하는 부분에서 사회성숙도를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카우치의 행동을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지고서 꼰대라고까지 비난하는 태도 역시 서울시나 경찰의 태도와 별반 다를바가 없어진다.

4.

카우치의 일이 커진 진짜 잘못은 다시 말하건대, 럭스와 카우치가 지상파 생방송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점에 있다. 자기들의 이름과 인격을 불특정다수에게 한꺼번에 휘둘러대는 것이 어떠한 일인지 전혀 인식을 안 하고 있었던 – 진짜 사소한 사항을 무시했다. 그랬다가 제대로 그 사태를 인식하자 정신을 못차리고 말도 제대로 못한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붙잡혀가면서 횡설수설해대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자기들이 뭘 했는지 몰랐다가 나중에서야 제대로 깨닫고서 공포에 질린 것이다. 지금까지 보기만 하다가 보이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은 말로야 쉽지만 몸으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는 사항이다.

카우치가 가져온 파장은 대략 두 가지의 사태를 드러냈다. 하나는 반항적이고 주류를 거부하는 측의 판도 역시, 주류만큼이나 생각없고 철학없고 의지없고 사회구조에 대한 몰지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남성중심적이며 모든 상황을 가볍게 보고 행동한다는 (헥헥헥 ;;)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점. 또하나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권력자들이 이전부터 가져온 이른바 ‘꼰대’의식(그 말은 여기다 써야한다)이 잠깐 주춤한듯했다가 물밀듯 올라오고 있다는 점. 정말로 둘 다 아ㅤㅎㅐㅎㅤㅎㅐㅎ하다.

워리가 카우치에게 끝까지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는 것은 대략 다음에 기인한다. 60년대 일어난 거대한 혁명의 물결과 개혁. 지금와서 보면 그건 지금의 꼰대들이 예전 꼰대들에게 반항한 게 99%였고, 이들이 주장한 것은 자기들 맘대로 마음에 드는 여자 벗기고 가지고 놀고 만만한 대상 찝적댄 거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오로지 나머지 1 % 때문에 가만히 있어줬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똑같다. 오히려 무개념적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일 수도 있다(나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카우치의 행동이 사회의 경직성에 일침을 던졌다느니 펑크의 정신이 어쨌다느니라는 말에 전면적으로 반대한다. 그런 건 철학이 기반해야 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고, 철학까진 아니더라도 생각과 관념을 가진 자라면 사회적 권력관계가 어떤지는 공중파 미디어가 뭔지쯤은 알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없는 몰이해라는 점에서 기존권력이 없다 뿐이지, 기반한 사고방식은 현재 권력자들과 똑같다. 생각없는 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아무리 이전에 개혁을 부르짖었건 말건 이전 인간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어리석음을 동정할 수는 있으나 옹호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카우치도 개념없는 서울시장과 경찰보다 나을 게 없다. 다만 권력이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적다는 것 때문에 한도를 넘어선 비난을 듣고 피해를 입는 것에 일말의 동정을 보일 뿐이다. 카우치는 처벌을 받아야한다. 미디어를 잘못 이해해서? 수준이 낮아서? 아니다. 공중에서 상대방이 당혹하는 모습을 즐거움의 원천으로 삼아, 미디어의 특성상 발생한 우위성을 빙자하여 시각적 폭력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카우치의 행동만을 처벌하면 되었지 카우치를 핑계삼아 도덕률 전체를 바로잡겠다는 망상을 사회권력을 빙자하여 자기들 잣대로 처벌권을 휘두르겠다는 서울시와 경찰의 폭력이야말로 새로운 형태의 범죄양산이다.

_M#]

8 Responses

  1. 쩝…… 이참에 나라이름을 무개념민국으로 바꿀깝쇼?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2. 워리님 글 읽고 있으면 진짜 속이 시원해요~~~`
    근데,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워니님 글 읽다가보면 정말 많이 정보를 수집하시고 모으시는 거 같으신데, 어디로 가면 그런 정보를 얻을 수가 있나요??

  3. 이봐.. 글쓴놈! 니가 이 사건에 대해 가장 중요한걸 빼먹었네?? 얘네는 음악가야 펑크 음악가!! 개념없는 너희사회적 관점태도와 신문자료따위만 모아보니깐 진실이 안보이는거지.. 뭘알겠냐;;

  4. 이분 그룹들을 뉴스나 인터넷기사따위에 떠돌아다니는 연예인가수들과 동일하게 생각하지마 .. 니가 뭘아냐 증말 ㅡㅡ 이딴글을 더럽게 너저분히 돌아다니니깐 진실이 더 사라지는거지

  5. 하다못해 글한번 잘쓰자고 해서 이사람들의 음악을 찾아들어봤냐?? punx.. 이 개념과 우리나라의 비주류중에서의비주류 인디 펑크밴드들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 노래 찾아서 한곡이라도 들어봤냐?? 너희 관점으로만 보지말고 우리 관점으로도 한번 생각을 해주지 ??

  6. 물론 잘했다는 건 아니지 그분들의 행동이..^^;; 근데.. 이글은 너무 구리다는거.. 가장 중요한 관점이 빠졋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