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SN519 Hammer of the Gods에 꼭지 돈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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넹. 지금 사실 분노모드로 달려서 지금 이게 잘 나올런지는… 여튼요.

처음에 이 에피소드 요약을 들었을 때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바로 앞 에피소드에서 캐스가 그 고생을 했으니 안 나와도 그닥 무리는 없었고요. 애시당초, 수퍼내추럴의 세계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괴담, 도시전설, 지역신 등이 실재한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시즌4에 등장한 기독교 세계관 역시 여러 신화 중의 하나일 뿐이죠.

원래, 신화라는 것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갈 때 그 나라에 맞게 이식이 되는 것이고, 그 나라에 맞춰 바뀌며, 그 나라에 있던 신과 융합하거나 아니면 그 아래로 들어가던가… 그런 것이라서. 기독교 세계관의 성인들도 기실 지역신의 변화라고 봐도 무방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대천사가 다른 신들보다 더 강하다고 하는 설정에 그다지 불만은 없었어요. 종교신화는 원래 강한 종교가 들어오면 그 종교신화의 인물이 원래 신화의 인물을 덮어쓰거나 아니면 격하하기 마련이죠. 우리나라에서 원래 성모라고 하면 그건 토속신을 가리켰지만 이젠 천주교의 성모로 바뀌었고. 천주교에서 ‘야훼’라고 부르던 것을 한국화하면서 ‘하느님’이 되었고요. 제우스 신의 마누라가 많은 것도 다른 지역에 그 종교가 퍼지면 융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거죠. 큐피드 에피소드의 큐피드가 사실 사랑의 신이 아니라 급이 낮은 천사라는 설정도 전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기독교 세계관의 일신교도 결국 다신교 중의 하나라는 것이 이 수퍼내추럴의 세계관이고, 이걸 제대로 가지고 만든 에피소드가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죠. 곱게 늙은 부부로 변신한 지역신 입을 통해 ‘예수가 등장하면서 우리 인기가 떨어졌어’라는 최대의 히트를 날렸던 지라, 설마 이럴 줄은 몰랐어요. 특히나 그 에피소드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원래 이교도 축제(미트라 신 축제)인데 기독교에서 가져간 거다,라고 말하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그 에피소드는 다른 종교간의 차이란 결국 종교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는 다 같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그런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그게 완전 엉망이 되었어요. 다른 신들의 등장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신중할 건 아니지만(모든 종교는 종교라는 이름 아래는 다 같으니) 여러 종교를 다룰 때는 어느 종교에 특혜를 주면 안되거든요.

대천사가 다른 신들보다 강하다는 설정은 무리가 아니에요. 강한 종교가 다른 곳에 들어갈 때, 기존의 신을 덮어쓰거나 밑으로 내려보낸다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최강으로 나오는 천사들이 지역신보다 강하다는 설정은 이상하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한 쪽 종교가 다른 쪽 종교보다 힘이 세다는 설정 자체는 불만이 없다는 거죠. 문제는, ‘모든 종교는 종교라는 이름 아래 다 같다’라는 대전제였어요. 그 대전제의 균형이 깨진 거죠.

여기서… 사람 잡는 호텔은 왜 나옵니까???

이거 진짜 빡 돌더라고요. 괜히 보여줄 장면 없으니까 넣은 건데… 이렇게 무의미하게 들어가는 설정이 에피소드의 정체성을 망치더라고요. 다른 신들의 품위가, 격이 떨어져요!! 이들이 하찮아 보이는 것은 루시퍼한테, 가브리엘한테 맥없이 당해서가 아니라, 신 답게 보이지 않아서 그래요. 칼리조차도, 그 품위 떨어지는 것들과 같이 있으니 대사에 힘이 없잖아요.

칼리가 무척 중요한 대사를 하지요. 이 세상에 얼마나 신이 많은데 너희 혼자 접수했다는 듯이 구느냐고 말이죠. 서양 종교관이라는 것은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고요. (…라고 대충 요약) 이게 핵심 대사인데, 그게 안 먹혀요. 왜냐, 신이라고 모인 것들이 오합지졸이라 그래요. 마피아 모임보다도 못해 보이니 원. 그 불쌍한 경비원 대가리 장면,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니, 그딴 거나 처묵처묵하는 것들이 무슨 세계 종말을 논하시겠답니까? 논할 자격이 없다는 게 아니에요. 논하는 게 우스워 보인다는 거죠. 사람처럼 형제간 갈등에 울먹울먹하는 대천사들에 비해서 아주 개차반 취급을 당했어요.

사실, 사람잡는 호텔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가 있었기에 더 화가 나요. 기독교의 세계관은 유대교가 원천으로,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같은 신화를 공유하지요. 가브리엘은 이슬람교에서도 무지 중요한 천사 아닙니까? (그래서 사실 가브리엘이 사람들 편에 서는 건 설득력 있어요. 걘 원래 이것저것 전해주며 사람들과 친화력이 높은 대천사거든요) 그런데,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넘어갈 때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인신공양'(사람 바치는 걸 가리키는 용어가 지금 이거 말곤 생각이 안 나서요)이에요. 유대교에서도 짐승을 잡아 바치는 것이 주로 나오지만, 최소한 경전 안에 보면 자식을 바치고, 아니면 믿지 않는 자들의 첫 배나 첫 아들을 신에게 바치는 것으로 나오죠. 기독교로 넘어오면서 사람을 바치는 것은 신이 자신의 육신을 바치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도시 하나를 아작내려고 천사들이 내려온 일도 …. 수퍼내추럴 안에서도 있었죠.

그렇다면 최소한 거기 모인 신들 입장에서는 누구나 다 사람 잡아먹는(먹었던) 신이라는 점에서 같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왜 지역신들만 그렇게 무식하게 지들이 지들 손으로 와구와구 잡는 장면이 나와야 한답니까? 어찌보면, 루시퍼와 미카엘이 한 판 벌여서 지구 반쪽을 아작내는 것도 일종의 ‘인신공양’이고요. 지금 천사들이 지상에 내려오는 거 자체가 인간의 몸을 입는 인신공양의 결과 아닌가요????? 초목의 신 히페 토텍은 새로운 살이 돋는다는 의미로 사람 가죽을 뒤집어 쓰기나 했지, 이것들은 지들 목적 채우려고 사람 뒤집어 쓴 주제에…

극의 설정상 이들이 서로 나은 게 없는데(힘의 차이가 낫다 아니다는 아니니까요) 앞에서 그렇게 해 놓고 나서, 뒤에선 입 싹 씻고 형제간의 징징비극을 찍어요????!!!!!!!! 마크 펠리그리노와 리처드 스파이트가 연기를 잘 했기 망정이지, 만일 둘 장면이 조금이라도 더 우스웠다가는 완전히 지금까지의 이미지까지 망칠 뻔 했어요.

이 대본은 진짜진짜, 사람들 간의 감정을 잘 찍는 사람이 했어야 해요. 이번 연출자 스타일을 전혀 모르니 원래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이번 에피소드는 마지막에 그렇게 입 싹 씻으려면 루시퍼와 가브리엘 장면을 그렇게 맹숭하게 해선 안되었어요. 바로 앞 에피소드에서 잭부장님의 날개가 나왔던 지라, 가브리엘의 날개가 주는 쇼크효과는 얼마 안 되거든요. 너무 비장해도 웃기지만, 최소한 가브리엘의 실없음에 비장미가 감돌아야 하는데 그거 안 보이잖아요. 오히려 루시퍼가 ‘나한테 이러지 마’가 더 절절하죠. (샘희 대사와 겹치니까요) 가브리엘의 비장미가 안 살다 보니, 작별 DVD가 아무런 역할도 못하죠. 으어…

기실, 가브리엘의 퇴장이 이야기가 막판으로 가는 신호일 수도 있었어요. 영화 <왕의 남자>가 비극으로 치닫는 신호는 그 개그 삼인방이 퇴장하면서부터 이죠. 마찬가지로 개그 코드인 가브리엘의 퇴장은 극 전체의 분위기를 지시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되잖습니까아아아!!!!! 캭 . 가브리엘의 퇴장은 어찌보면 그렇게 경계했던 ‘형제간의 살육’의 첫 발이에요. 어쩌면 그게 신의 개입을 불러올 수도 있는 대형사고거든요. 그런데 그 놈의 DVD … 아 놔. 조명만이라도 좀 분위기 내 줬으면!! 그림자라도 지던가 아니면 부연 황토빛 아련함이라도 해 주던가… 슈내의 대형 공공의 적은 사실 문어립키보다도 촬영감독이 아닐까 (근래) 이러고 있슴다. 그저 물빠진 색감 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말이죠. 킴 매너스가 있었을 때는 그래도 약간의 진득함이 배어들었는데, 이게 HD 촬영으로 바뀐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그게 그냥 쏙 빠졌어요. 이게 코미디가 늘어난 시즌 3 이후엔 부담없지만, 괜히 진지한 척 하는 시즌 4 이후엔 좀 악재로 작용하거든요.

단독 에피소드는 단순히 ‘잉여’ 에피소드가 아니죠. 단독 에피소드는 큰 줄거리의 곁가지이면서, 동시에 큰 줄거리의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큰 줄거리의 흐름을 잠시 멈추면서 지금까지 어디에 왔는지 돌아보게끔 하고, 때로는 큰 줄거리를 멀리서 높이 바라보며 조감하는 역할까지 하지요. 2000년대 넘어서 큰 줄거리 드라마들이 떡밥투척이 심하고 몰아치다보니 단독 에피소드와 균형을 잘 잃어버렸는데, 그래도 슈내 경우는 시즌4까진 그걸 잘 잡았거든요. 전 남들 다 욕하는 시즌 5 정신병원 에피소드도 사실 재미있게 봤습니다. 드라마의 방향도 쉬고, 얘들도 쉬고(…는 아니지만) 그런 디딤대로 봤죠. 그런데 이번 에피소드는 잉여 수준을 넘어 재앙 수준으로 넘어갈 뻔 했어요. 세계관의 균형감각 자체를 흔들어 버렸으니, 진짜 심장떨려서 이거, 원…

가브리엘 얘기 싹 빼고 오로지 신들과 샘희딘희 쌈박질로 한 후에 파리대왕으로 넘어갔으면 차라리 분위기라도 맞았을 거에요. 어우 진짜 그 지저분함… 눈깔수프랑 딱 맞죠. 그렇게 완전히 단독 에피소드로 했다면 괴작스타일이네그건마음에들어 이랬을 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습니다. 아아. 차마 떨치고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쓰고 나니까, 원래 가브리엘 없었는데 넣은 게 아닌가하는 불길함이 감도네요)

 

 

나중에 추신:
부글부글하긴 했는데, 나중에 보니 칼리 대사가 들어간 거 자체가 대단하기는 합니다. 우리나라같이 이주노동자 없는 거 취급하는 나라에서 뭐라뭐라 할 개제가 안 되어요. 위로해준다는 말에 피 거꾸로 솟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에피소드가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쿡 애들 한테는 그래서 어썸이고 우리한텐 그래서 어쉣이겠죠. 문화존중이라는 말을 꺼낼 자격이 제게 없는 것이라서… 미쿡애들이 그리 실수하는 오만이 우리같이 망각하는 오만함 보다야 백 배 낫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