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라이프] 방송국은 가수 양성소?

언제부터인가, 가수는 노래보다도 예쁘고 잘 빠져야 하고, 옷도 잘 입어야 하고, 그거라도 아니면 말을 잘 해야 하고, 유머도 있어야 하고, 깡다구도 있어야 한단다. 결론은? 그래야 인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반대로 인기가 미리 있어야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인기를 얻으려면 미리 성형수술도 해야 하고, 방송에 출연해서 넉살좋게 떠들고, 온몸을 바쳐 히히덕대야 한다. 주객전도다.

가수는 노래를 불러 먹고 사는 사람이다. 노래를 부르면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음반을 구매해야 돈을 벌 수 있다. 가수가 자신의 다른 재능을 보이거나 재롱을 떨어 돈을 버는 데 일조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른 재능이 있다면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대 매너와 쇼맨쉽이 화려한 가수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입담과 매너는 노래를 향한 심지이며, 증폭함이다. 노래 이외의 재능이 빛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모두 노래가 있기에 빛이 나는 것이다. 가수이기 때문이다.

가수 키우기 프로그램은 실제로 나오는 사람들이 일정 실력 이상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다. 나오는 사람이 쇼맨쉽만이 아니라 실제 노래하는 실력을 갖췄다는 것을 누구나 이해할만큼의 기본기가 있어야 한다. 발성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코메디언을 가수로 키워주겠다는 코메디를 연출하고 나면, 그 프로그램의 공신력은 추락해버리고 만다. 공신력이 추락하면 남는 것은 오직 프로그램 제작자들과 출연진 사이의 연줄과 벌린 판은 끝장을 봐야겠다는 치기밖에 없다. 노래의 실력여부는 증발되어버린지 오래다. 가수를 만들겠다면서 노래실력은 빠진 프로그램은 기초 도덕성 결핍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고, 도덕성이 결핍되었거나, 보고 듣는 순간만은 도덕성을 결여하기로 결정한 매너없는 시청자 및 청취자가 주로 남게 된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방송이 음반판매에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는 것을 알기에 지상파에서는 오히려 가요프로그램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최소한 순위프로그램이 존재하더라도 기준을 투명한 음반판매량에 둠으로서 공신력을 인정받는다. 거꾸로 방송국들이 알아서 자제하기에 음반 투명성이 확보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무리 봐도 정반대방향이다. 키워줄테니 나와봐라, 는 거의 극단까지 간 느낌이다. 방송이 음반판매에 미치는 영향력을 아예 대놓고 과시하는 셈이다. 뜨고 싶으면, 줄을 서시라. 방송에 나올 재주가 없으면, 음반을 팔 생각을 마시라. 해외에서 가수들을 부르는 것이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출연료가 너무 비싸서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왜 한국가수들은 출연료가 낮은가도 생각을 해 볼 문제다.

가수를 만들겠다는 프로그램에선 노래를 잘 하는가 아닌가는 이미 문제가 아니다. ‘가수’는 오직 핑계일 뿐이다. 누가 이기나. 내가 찍은 쪽이 어찌 되려나. 경마나 경륜이나 투견장과 하나 다르지 않다. 웃고 떠드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가수’를 끼워넣은 것 뿐이다. 그런데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가? 이유야 많다. 본인들이 하고 싶어하니까. 사람들이 보니까. 하고 싶어한다고 무조건 넣고, 보고 싶어하니까 구경거리로 만든다? 노래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가수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실력있으나 무명인 사람을 프로그램이 수퍼스타로 만든 성공 사례는 단 하나,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예외 조항 뿐이었다.

2002/04/18
시티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