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리얼리티 쇼

경향신문에 한국선 맥못춘 美 ‘리얼리티 프로’하고 기사가 났습니다. 반쯤은 동의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작하는 리얼리티 쇼는 재미가 너무나 없어요. 물건너서 건너온 미국이나 영국 리얼리티 쇼는 거짓말 안 하고 사람 머리 속이 하얗게 되도록 만들지요. 네. 사실 재미있다고 하기는 그렇습니다. 몰입해서 보기는 하지만, 정말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주저하게 되어 있어요. 민망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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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국이나 영국 리얼리티 쇼를 좋아하는 것은, 일단 걸어놓은 떡밥이 굉장합니다. <도전 슈퍼모델> 같은 거 보세요. 정말 출세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겁니다. <프로젝트 런웨이>도 그렇죠. 트럼프 기업의 CEO가 될 수 있는 <어프렌티스>는 그야말로 최강입니다!!!! <기숙학교는 괴로워>도 2기에서는 학생들에게 진짜 자격증을 발급해주는 등, 도전해야할 당위성이 강합니다. 게다가 떡밥만이냐? 아닙니다. 그 떡밥을 보고 모여든 사람들의 실력이 장난 아닙니다. <도전 슈퍼모델>같은 경우는 초보를 프로로 키우는 프로그램이지만, <어프렌티스>는 정말 어디 가도 꿀리지 않는 인재들의 피터지는 싸움입니다. <프로젝트 런웨이>는 가시적으로 실력이 드러나지요. <아메리칸 아이돌>은 출연자의 내공 뿐만이 아니라 사이먼이 쏟아내는 독설을 보세요. 독설의 기술이 너무 훌륭해서 입이 딱 벌어집니다. 독설은 괴로와도 그 실력은 인정할 수 밖에 없죠. 그리고 제작진 역시 영악합니다. 자신들이 목표로 한 재미를 위해 극을 끌어가는 게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포기할 줄도 압니다. 그때 리얼리티 쇼가 진가를 보이죠. 쇼가 아니라 진짜 사건이 벌어질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할일없는 훔쳐보기가 삶의 단면을 끌어내는 예술이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우는 그 떡밥이 초라해요. 치사하고요. 하지만 떡밥문제만은 아닙니다. 떡밥을 보고 모여든 사람들의 실력도 일천해요. 뛰어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짝짓기 프로그램이라고 예외는 아니에요. 짝짓기를 위해서 뭐든 하려는 경쟁심리, 내놓는 카드패… 이런 것도 일종의 기술이거든요. 보다보면 고루한 방법으로 사람 마음에 들겠다는 측이나, 그걸 보고서 고심을 한다고 하는 측이나, 그걸 긴장감 넘친다는 듯이 보여주는 측이나 다 한심해 보이죠. 하수만 있고 고수가 없으니 맥이 빠지는 겁니다. 깔보게 되어요.

기사에서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온정주의가 강하다보니 비판에 관대하지 못한 분위기를 지적합니다. 그리고 악플에 대처할만큼의 사람이 없다는 것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전체 분위기는 남의 강력한 비판이나 비난 등에 관대하지도 못하고,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는 잣대도 제대로 내세울 줄 모르고,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에 엉뚱한 3자가 도덕률을 내세워 참견하기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기사를 보다가 깨달았어요. 왜 대한민국에서 유독 리얼리티 쇼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는지. 그건 바로, 기사에서 지적한 이유 외에도, 미국의 리얼리티 쇼에 필적하는 상황이 다른 데서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거죠. 무슨 소리냐고요? 리얼리티 쇼의 떡밥은 리얼리티 쇼의 재미를 상승시키는 도구입니다. 리얼리티 쇼의 가장 핵심이 아니에요.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일등한 사람에게 돈을 주느냐 마느냐 이런 문제도 문제지만, 거기까지 긴장감을 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판에 뛰어든 사람들의 내공이 얼마나 되느냐이거든요. 누가 일등해서 진짜 모델이 되고, 기회를 잡고.. 이것도 궁금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누가 어떻게 실력을 보여주고 누가 어떻게 대응해서 추태를 보이던가 이런게 제일 궁금하죠. 그게 리얼리티 쇼를 보는 시청자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리얼리티 쇼는 인터넷 댓글에서 벌어지죠.

네이버 뉴스가 유달리 인기가 좋은 건 바로 댓글의 ‘리얼리티쇼화’ 라고 봅니다. 네이버 댓글의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다들 네이버 뉴스 댓글에서는 어떤 저질의 반응이 나와도 그러려니,하고 봅니다. 디씨인사이드도 어떤 저질이건 고급이건 그렇죠. 이 둘의 공통점은 익명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점이겠지요. 한국인 특유의 온정주의나 주변 신경쓰기가 사뭇 약화되는 장치입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의 리얼리티 쇼가 가지는 강점, 남 신경 안쓰고 거침없이 나가는 태도가 보장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회원수가 아주 많거나 / 아니면 회원의 존재가 없이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점, 인력풀이 넓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초절정 하수부터 고수까지 다 포진하는 겁니다. 그래서 떡밥은 없어도 첨예한 대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프로그램은 인터넷 리플 만큼의 강도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이런 댓글 중독은 상당합니다. 리얼리티 쇼 중독이 상당하듯이요. 예측이 어느 정도까진 가능하지만 변환요인이 언제 어떻게 뛰쳐나올지 모르지요. 그 재미는 상당합니다. 또한 리얼리티 쇼의 특징 중 하나인데, 불쾌감도 시청을 지속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경쟁위주의 리얼리티 쇼에서 일부러 성격 까칠한 사람을 상당히 오래 붙잡아두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댓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절정 고수만큼이나 하수도 사람을 붙잡아두는 요인입니다.

차이는 있습니다. 리얼리티 쇼는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댓글은 그 끝이 ‘없습니다’. 리얼리티 쇼의 마무리는 화려하지만 댓글의 마무리는 흐지부지이죠. 리얼리티 쇼는 리얼리티를 극대화한 쇼이지만, 댓글은 사회현상을 반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댓글문화가 쇼 자체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한국인 특유의’ 온정주의와 분위기 맞추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진행될수록 분위기 맞추기야말로 폭력적인 도구로 변해버립니다. 리얼리티 쇼에 빠져들은 이른바 죄책감을 동반하는 쾌락(영어로는 아예 guilty pleasure라는 말이 있더군요)에서 헤엄치면서  그 자책감을 받아들이기보다 자기는그 진흙탕에서 백조처럼 깨끗해야하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지켜보다 나오는 반응이 너는 나빠 식의 도덕적단죄인 거 같습니다. 즐겼으면 같이 즐겼다고 인정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리얼리티 쇼는 다른 의미로 혼탁해지죠. 여기에 하나를 더 하고 싶습니다.  절제모를 익명성의 끝에는 사회 전반을 감싸고 있는 획일주의와 폭력성이라는 사회현상을 마주쳐야만 한다는 현실의 벽, 자각말입니다. 재미로 시작한 것이 비관 속에서 지리멸렬 끝나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이상, 끝은 장대해질 수가 없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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