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미래로 갈수록 의상은 재미가 없어지는가

헐리우드 영화밖에 본 게 없어서 이게 전체적 현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근래 본 리얼판타의 ‘은하에서 온 방문객’을 보면 꼭 헐리우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미래를 다룰 때는 의상이 정말 재미가 없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봐도 의상상을 타는 것은 과거시대를 다룬 시대극이지 현재나 미래를 다룬 경우는 (근래=내가 본 시대에 들어) 드물다. <매트릭스> 정도가 있을까.

옛날엔 그게 불만이었다. 어째서 미래로 갈 수록 의상은 그렇게 재미가 없을까. 현대만큼 패션에 모두가 신경쓰고 유행을 신경쓰는 때가 없을 텐데 어째서 미래를 다루는 영화들은 다같이 재미없는 의상을 입는 것일까.

<이퀼리브리엄>을 보면서 여러가지를 느꼈지만(마지막 장면은 ‘영국식 유머의 승리야. 영국놈들이란..’을 원츄로 날렸다 <- 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촬영 및 작업부분만 영국이었나보다. IMDB에서 보니 제작국가는 미국으로 되어있다) 지금도 인상적인 것은 그 영화의 잘난놈들이 입는 옷이다. 솔직히 보면서 '저것도 옷이냐'를 날렸기 때문이다. -_-;;; 베일씨 몸매가 멋지고 빈씨 목소리가 멋져서 봐 줬지, 정말 그런 옷을 잘난층이라고 믿는 아그들이 입는다고 생각하면 그 상상력부족(엥 사회가 의도한거네)과 감각 및 센스부족(이것도)은 정말 레지스탕스 되고 싶게 끔찍했다. [#M_ 물론 그 영화에서는 획일화된 사회상을 그리기 위해서 생각없는 인간들이 입는 옷이란 컨셉하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어집니다) | 글닫기 |

물론 그 영화에서는 획일화된 사회상을 그리기 위해서 생각없는 인간들이 입는 옷이란 컨셉하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저것도 옷이라고 입었냐,는 감상은 분명히 의상디자이너와 감독의 의도였다. 부언하나 하자면, <매트릭스>의 의상은 ‘현대적’이지 ‘미래적’이 아니다. 그리고 1편으로 한정하자면 그 옷은 입는 옷이 아니라 보는 옷이기 때문에(입는 것이라고 생각만 하는 가상의 아이템이므로) 그 똥꼬에 낄것 같은 트리니티 쫄가죽도 옷으로서 인식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언더월드>에서 케이트 베킨세일이 입은 옷은 정말로 폭소였다. 통굽이 있어서 봐 줬지…

그리고 하나 더 – <이퀼리브리엄>을 볼 때 이미 나는 좀 달라져 있었다. 과거의 의상을 보다보니, 아니 과거의 상류층 옷을 보다보니 견해가 달라졌던 것이다. 현대가 패션의 시대이며 멋을 부린다는 견해를 전면철회하게 되었다.

과거의 의상이라는 것이 가난한자 피빨아서 만든 결정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옷 자체가 지닌 감각이라는 면으로 평가할 때, 옷이 지닌 아름다움과 풍성함은 도저히 과거를 따라갈 수가 없다. <갱스 오브 뉴욕>에서 카메론 디아즈가 ‘패셔너블’하게 입던 옷은 정말 나도 입고 싶을 정도의 충동성을 담고 있었다. 지금와서 보면 쓸모없다고 버리는 부분, 풍성하고 보슬보슬한 천의 여유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슬쩍슬쩍 보이는 안감의 고운 자태가 눈길을 끌어당긴다.

<백 투 더 퓨처> 3편에서 클레이튼 선생이 입고 나온 보랏빛 의상도 무척 예뻤다.(캡처 사진을 못 찾겠다 -_-;; 도대체 보정판 DVD는 언제 나오는겨!) 연애할때는 짙은 보라색, 나중에 결혼해서는 연한 보라색. 특히 연한 보라색 의상은 이젠 시간초월한 의미가 들어갔기 때문에 그당시 의상이라기보다는 약간 여러 시간대의 의상을 합쳐놓은 느낌이 든다. 특히 치마선이 우리나라 치마로 치면 열두폭치마선같은 고아함이 든달까. 그 옷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파 앤 어웨이>에 그 옷이 나왔을 때 정말 뒤집어졌다!!!! (의상 담당자가 같은 사람이라서 장난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 옷을 바라보며 니콜 키드만이 한 대사가 “이런 게 요즘 옷이야!”였기 때문애 -_-;;;;)

또한 <위험한 관계>의 의상도 빼놓을 수가 없다. 비열하고 야들야들한 발몽(존 말코비치)에게는 뭔가 하늘하늘 붙는 선이 살아나는 의상, 준엄하고 냉혹하고 권위가 넘치며 가식이라 부르기엔 압도감이 큰 메르떼이유(글렌 클로즈)에겐 표정관리에 딱 맞는 풍성한 로코코 의상. 얌전하지만 너무 순진한 트루벨(미셸 파이퍼)의 그 고아한 의상. 순결함이니하고는 거리가 멀게 만든 의상감각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키가 말만큼 큰 세실(우마 서먼)에게 그 귀여운 모자라니!! T.T
밀로스 포만의 <발몽>이 정말 재미가 없었던 건 – 솔직히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보다도 더!!!!! – 의상이 70%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_-;;; 나 밀로스 포만 좋아하는데.

이건 그 의상담당자의 솜씨가 워낙에 뛰어나서 옷이 멋진 것이긴 하다. 아무리 의상이 멋진 시대의 부잣집 애들을 다뤄도 뭔가 떨어지면 허수리한 – 구시대라는 퀘퀘한 감을 더 증폭해서 더 허수리하게 보인다는 뜻 – 의상이 되고 만다.

결국, 과거의 의상은 의상이 품고 있는 여유와 풍성함(사치성이 아니다)에서 현대의 의상을 능가한다. 현대의 의상이란 점점 왜소해지고 효율성을 빌미로 쪼잔해졌다. 실제 효율성이란 눈꼽만치도 없으면서. 진정한 패션리더 코코 샤넬은 ‘코르셋을 벗고 운동해서 몸을 다듬고 옷을 입어라’라고 했다. 샤넬의 의상은 옷을 입어서 멋진 것 뿐만이 아니라 옷이 지닌 감수성과 일심동체가 될 수 있어야 어울린다. 근래에 나온 옷이란, 오로지 옷을 입으면 뭔가 달라질 것이란 환상만을 제공한다. 다 구라다. 옷을 입는 것은 패션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패션감각을 구체화하는 것일 뿐이므로 유행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데 유행에 휩쓸리지 않으면 바보 만드려는 의상회사의 마인드 자체가 존재할지니… 미래로 갈 수록 의상은 더 못생겨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래를 그린 영화의 의상감각은 정확하게 미래를 예견한 것이다. <이퀼리브리엄>의 의상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개떡같은 사회가 되면 의상도 개떡이 된다. 여기서 워리가 내놓는 비약은 다음과 같다. 현대의 획일화되고 효율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패션은 이 사회의 획일성과 비효율성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물론 잘 빨아입었냐!라고 현대의상의 우월성을 증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비싼 브랜드에서 파는 티셔츠 하나가 드라이클리닝하라고 떡 써붙인 꼴을 보다보면… 합성섬유 걸치는 우리 신세는 역시 졸렬해질 뿐이다. 역시 의상은 미래로 갈 수록 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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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Responses

  1. 이시태/ 누구시죠?
    행인 1/ 기술발달하곤 상관없는 거 같아요. 효율성 빙자가 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2. 아마도 계몽사상에서의 실학의 영향이 컸기 때문에 천의 여유가 없어진거 같아요.
    말그대로, 효율성 빙자..-_-;

  3. 현재의 우리가 미래의 의상이라는것을
    무슨 기준으로 얘기 할 수 있지요?
    이건 순전히 지금의 기준으로 보는 시각일 뿐이쟎아요.
    매트릭스의 저 의상이 미래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논한다는건 웬지 ㅎㅎㅎㅎ

  4. 흠, 기쉬가 스칼렛에 나왔군요…무슨 역으로 나왔나요?

  5. 유행에 맞게 옷을 입는 것은 일종의 ‘착시효과’를 노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 ‘이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입음으로써 그 옷을 걸친 사람까지도 신선하고 예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죠. 물론 여기엔 유행하는 것이 새롭고 이뻐보인다, 고 하는 일반적인 취향에 대한 가정이 있습니다. 유행 무시하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개발하는 것은 좀더 정직한 옷입기이겠지요. (물론 여기에도 착시효과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리 길어보이게 하기 등 단점 가리고 장점 극대화하는 기법 중)

  6. 사마타/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가 ‘미래를 배경으로 한 과거 영화만큼 시대착오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이 없다’랍니다. 지금의 시각에 매인 만큼 미래에 대해 논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의미불명, 미래로서는 시대착오가 되는 거죠. :)
    오필리어/ 레트 부인으로 나왔대죠. ( ;;; )

  7. 일반적인 미래의 암울함…
    허지만 화려해 보이는 사람 죽이는 액션은 제 눈이 즐거워 하더군요….^^”
    차이나 칼라 비슷한 디자인은 저에게 잘 어울린다는 소릴 남들에게 들은지라… 세상의 옷이 이런 디자인 밖게 없다면 하는 생각을 해봤죠….ㅋㅋ

  8. 레트 부인 ;;; 앤이었군요. 원작엔 멜라니가 환생한 것 같은 여자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