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더라의 도덕 “논픽션 시네마”

다큐멘타리 채널 Q채널의 <논픽션 시네마>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만을 골라서 보여주는 시간이다. 제작사도 배급사도 소재도 공통점이 거의 없다. 오직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온갖 엽기적 사건부터 감동 스토리, 귀신나오는 이야기, 억장 무너지는 슬픈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논픽션 시네마>는 완전히 별개의 영화를 논픽션이라는 테마로 엮은, 쉽게 말해 Q채널 문고판 시리즈라고 보면 된다.

논픽션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다큐멘타리이건, 드라마이건 이미 이미 결과가 나온 상태이므로 왜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는가,하는 과정을 중시하게 되고 선정주의로 흐르게 될 공산이 높다. 아무리 엽기적 장면이 등장해도 실제 그랬으니까,라고 주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중요해지는 것은 이 사건을 접하는 제작진의 자세이다. 게다가 ‘시네마’. 드라마로서 픽션의 비중이 커지는 만큼 제작진이 어느 점에 더 중점을 두고 해석했는가에 대한 책임의식이 확실히 강조가 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논픽션 시네마>는 드라마로서의 비중이 크고 시청자에게 이 사건의 전모를 보여준다, 보다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서 바라본다,는 의견제시의 자세가 강하다.

이러한 제작자의 현실 해석을 더 중시하는 제작풍토가 오히려 논픽션적 성격을 강화하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 <그녀들의 전쟁(For Their Own Good)>은, 한 염색공장의 여자 직공들이 강제로 불임시술을 당하고 곧이어 공장폐쇄로 실직에 놓이는 상황을 냉철하게 그린다. 인간으로서의 모든 존엄을 상사와 노조와 남편들에게 하나하나 야금야금 빼앗기는 과정은 마치 칼에 베이는 듯 쓰라리다. 이 피끓는 분노와 각성은 어떠한 다큐멘타리도 뉴스도 제대로 해 내지 못했던 일이다. 철저한 분석력과 냉철함. 제작진은 고난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승리라 하기엔 흘린 피와 눈물이 너무 많다. <논픽션 시네마>의 몇몇 영화들은 신변잡기적이고 선정주의에 기반한 심심풀이 땅콩 작품도 꽤 되지만, <그녀들의 전쟁>같이 논픽션을 다룬 영화들의 진수가 있기에 존재가치를 상호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컴필레이션 앨범’인 <논픽션 시네마>가 시사하는 의미는 단지 논픽션의 감동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상당수 논픽션 기반 드라마나 다큐멘타리와 비교해 볼 때, 제작진의 자세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변잡기적 다큐멘타리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는 다큐 드라마등은 오로지 ‘~카더라’에 의존해서 이야기 당사자를 무조건 불쌍한 표본이나 선정적인 시각의 눈요기로 만들기가 일쑤이다. 센세이셔널한 소재를 보여주고 나서 ‘이러면 사회적으로 안됩니다’하는 윤리교과서만도 못한 말로 마무리를 짓는 그 수많은 다큐멘타리도 모자랐던 것이 틀림없다. 부부가 어쩌다가 이혼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려주겠다는 구실로 불륜, 마약, 폭력, 청소년 성범죄, 동성애 등을 드라마적 구성도 허술하게 70분이나 싫컷 ‘보여주고’ 나서는, 법률적 상담은커녕 ‘둘이서 잘 다독여 보시죠’하고 자기들은 발을 싹 빼고, 700 전화서비스로 이혼여부를 심판하라고 하는 막가파까지 등장했다. 그 자극적인 장면들의 존재 이유는 증발되어버린 것이다. 소재로서의 논픽션은 핑계거리가 아니다. 핑계로 등장한 논픽션은 선정성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특히나 드라마로서 논리적 유기적 구성도 갖추지 못했을 때는 이미 드라마도 아니다. 쓰레기다. 전파낭비다.

다큐멘타리가 필연적으로 지니게 되는 소재의 선정성, 시청자의 엿보기 심리를 어느 선까지 지킬 것이냐는 제작진의 자세는 제작진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또한 시청자 역시 ‘이게 진짜 사실이더라’라는 전제가 깔려있으면, 아무리 내용상 허점이 있어도 관용성이 생기게 된다. 허구와 달리 현실은 논리적 결함도 함께 포함하거나 혹은 설명 불가능하게 유기성을 잃는 지점이 반드시 생긴다는 암묵적 결속이다. 선정주의와 암묵적 결속을 응용하는 것이 바로 다큐멘타리 드라마이다. 그리고 당사자를 인간적으로 비하하지 않고 존엄을 표현하며, 드라마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작품의 질을 보장해준다.

그 점에서 <논픽션 시네마>는 상당히 좋은 표본이다. <논픽션 시네마>를 편집음반으로 치자면 아주 좋은 편집음반이다. 문고판으로 치자면 A급이다. 어떤 때는 웃음을, 어떤 때는 분노와 각성을, 어떤 때는 어처구니없는 인간 조소의 경지를 종횡무진 누빈다. 가끔가다 대책없는 감상주의와 선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존재 의의가 의심스러운 작품도 있지만, 가끔이라면 불량식품을 먹어도 상관없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불량식품 덕에 논픽션을 다루는 픽션의 정수를 찾아내는 기쁨까지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