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효과~ 이화효과와 몰입효과

지하철 결혼식 소동이 엉뚱하게도 내 친구 셜럴러한테까지 미쳤다. 셜럴러에게 애도를 표하며 -_-;; 트랙백.

게릴라 연극이라는 말로 프란슈트그룹(맞게 읽었남?)과 호서대 연극동아리 지하철 연극하고 엮일 수는 없다. 프란슈트그룹의 행위예술은 분명히 플래시몹에 가깝다. (프란슈트그룹은 플래시몹의 즉흥성이 없고 특정 모임이 미리 준비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플래시몹은 주로 엉뚱한 행동을 함으로서 지켜보는 사람에게 이화현상을 일으킨다. 즉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행동이 실제 일어난다는 것에 놀라지만 그것이 실제라고 믿게 되지는 않는다. 호서대 연극동아리의 지하철 연극은 그냥 일반 연극을 아무 곳이나 골라 실연한 것 뿐이다. 연극이라고 밝히지 않으면 진짜로 알게끔 한 것이다. 이화와 몰입, 기반한 예술의 관념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실제 현장에서 예고없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둘이 같지 않다. 실연자의 철학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행위예술은 행위자와 관람자 사이의 교류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그 교류의 바탕은 행위자의 철학이다. 무엇을 생각하며 실행하는가, 어떠한 반응이 나올지 미리 충분히 생각하고 고찰해 보고서 이를 실행하기로 했는가, 그 결과에 대해서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행했는가. 프란슈트그룹은 공연 후에 자기들이 연극을 했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호서대 연극동아리는 연극이라는 말을 해야 했다. 기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관람객에게 이화효과를 내느냐, 아니면 전통연극의 몰입효과를 내느냐를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들의 처신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 한 마디 안 한 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전국에 매스컴을 탔고, 내 친구는 서버가 닫혔다. ^^;

프란슈트그룹과 호서대 연극동아리를 뭉뚱그려 그냥 게릴라 연극이라고 부르는 것은 안이한 분류다. 어떠한 철학을 바탕으로 게릴라성 행위예술을 했는지를 파악한다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추신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어떤 행위예술이건 관람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선을 미리 예측하고 행동해야한다. 즉 결과적으로 보는 사람의 감정을 완전히 폭발시킬 정도로 할 것인지, 아니면 웃어 넘기는 정도로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만 해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봤을 때의 최종평가까지 해당하는 것이다. 호서대 연극동아리는 그 자리에서만의 감정에만 충실했지 그 이후와 파급효과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럴 줄은 몰랐다,라고 얘기할 것이고 사실 그럴 줄 몰랐을 것 같기도 하지만 – 예술의 의미에서는 그럴 줄 몰랐던 것 까지도 책임지기를 요구한다는 잔인한 진리를 덧붙여야만 한다. 자기가 예상못한 범위까지도 책임을 지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학습이며 훈련이다. 특히나 예술에서는.

2 Responses